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홀 앤 오츠 (문단 편집) == 개요 == || [[파일:홀앤오츠프로필.jpg|width=300]] || || 앨범 ‘The Very Best Of’ || [[미국]] [[펜실베이니아|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출신의 [[블루 아이드 소울]] 듀오. 1970년대 초반 데뷔하여 1980년대 초중반에 업계의 정상에 머물러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블루 아이드 소울의 대표적인 뮤지션이며 [[필라델피아 소울]]을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 장르를 혼합하는, 그루브 있는 음악으로 [[미국 흑인|흑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선 인지도가 낮지만 영미권에서는 엄청나게 큰 사랑을 받은 그룹으로, '''1980년대 초 차트를 지배한 그룹'''으로 평가받으며 한 시대의 상징격으로 여겨지는, 전설적인 그룹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들보다 적게 회자되지만, 당대 인기는 엄청났으며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며 상당한 고정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전설적 그룹이다. 현대에 잘 알려져있는 1980년대 대표 아티스트인 마돈나/프린스/마이클 잭슨/조지 마이클 못지않게, 오히려 차트에서는 더욱 큰 히트를 친 아티스트가 바로 홀 앤 오츠와 필 콜린스인데, 홀 앤 오츠의 경우 특히나 80년대 초 약 3-4년간 대중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 1970년대에는 선술한 블루아이드 소울, 특히 필라델피아 소울의 영향을 받은 앨범들을 발매한 반면, 성공가도를 달린 1980년대에는 여기에 팝, 록, 그리고 신스팝적 요소를 추가해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다만 한국에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데, [[AC/DC(밴드)|AC/DC]], [[롤링 스톤스]]와 함께 이러한 부류의 가수들의 예시로 항상 언급된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의 그들의 인기는 80년대 당대에도 엄청나서 일본판 한정 앨범도 발매하고 80년대는 물론 90년대에도 여러 번의 대단위 라이브를 펼친 바 있다. 예를 들면 한창 인기몰이를 시작하던 1982년의 NHK 홀 라이브나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ftYgy2xNLF0]]), 1988년 은튀후 1차복귀 당시 일본에서 열린 도쿄돔 라이브도 완전히 만원으로 들어찬 모습을 볼 수 있다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ieuUvg-KjWk]]). 여섯 개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스티비 원더]]가 10곡, [[마돈나(가수)|마돈나]]가 12곡, [[엘튼 존]]이 9곡의 싱글 1위곡을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해봐도 대단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앞에 언급된 가수들은 이러한 1위곡들을 10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에 기록한 반면 홀 앤 오츠는 5개의 넘버 원 싱글을 1981년에서 1984년 사이에 기록했다. 80년대 중반 이들의 인기를 짐작케 하는 기록으로 1984년 "Out of touch"가 마지막 1위를 기록했을 때까지, 80년대 이들과 동수인 5곡의 넘버 원 싱글을 기록한 유이한 가수는 바로 마이클 잭슨뿐이었다. 특히 빌보드 탑 40곡을 80년대로 한정하면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보다도 더 많은 싱글 히트곡을 (총 Top 40곡은 29곡, 그중 22곡이 80년대) 보유한 팝의 전성기인 80년대 최고의 듀오였다. 이 기록이 어마어마한 건 이들이 발매한 총 싱글수가 63개였다는 것. 즉 29/63, 46%, 싱글 두 곡당 최소 한 곡은 탑 40에 들었단 이야기이다. 이는 2000년대기록까지 합한 것이니 80년대만 따지자면 전성기에는 거의 싱글을 내는 것마다 최소 빌보드 탑 40는 기본이었다는 소리다. 싱글 한 장에 보통 A, B면 두 곡이 실리고 A면이 타이틀 곡이니 싱글을 낼 때마다 히트곡이 나온 셈. 그리고 이 기간에 기록한 탑 10 싱글의 갯수는 총합 13개인데, 이 당시에는 싱글컷된 노래들만 차트에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보기 희귀한 기록이다. 보통 1년에 싱글을 4~5개 정도 발매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이 기간 동안 발매한 대부분의 싱글들이 대히트했다는 것이 체감뿐만 아니라 기록으로도 확실하게 증명이 된다. 대단한 점은 데뷔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중견 아티스트가 서서히 인지도를 높이다가 데뷔 10년 차에 최전성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빌보드에서의 위상은 2008년 발표한 1958년- 2008년까지 50년간 가장 싱글차트에서 빛을 발했던 100인의 아티스트 (링크[[https://www.listal.com/list/billboard-hot-100-alltime-top]])에서 15위를 차지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참고로 프린스가 16위). 당시 이들의 인기를 보여주는 대표적 공연으로 1985년에 뉴저지의 리버티 스테이트 파크에서 열린 라이브를 보면 약 6만명 이상의 관중이 들어찬 모습을 보여준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ZRTTES4BZ04]]). [[파일:Hall and Oates Liberty Park Live.png|width=600&height=400]] 이렇게 전성기를 맞이한 그들은 1984년 자신들의 6번째 빌보드 1위곡을 만들어 낸 후, 그들의 음악적 우상이자 60-70년대 [[소울 음악|소울]]의 대부인 [[템테이션스]]과의 1985년 아폴로 극장 합동 라이브를 치룬 후 (홀과 오츠에겐 데뷔때부터 이들 선배들과의 공연이 꿈의 무대였다고 한다) 상업적 인기에 염증을 느끼고 잠정적 은퇴를 결정한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의 활동공백기 동안 대릴 홀은 솔로가수로 1986년 빌보드 5위를 차지한 "Dreamtime"을 발표하는 등 커리어를 이어간다. 3년의 공백후 그들은 다시 음악적 결합의 갈증을 느끼고 선술한 "Oh Yeah!"앨범으로 복귀한다. 이들의 80년대 중반까지의 인기를 반증하는 예로 바로 이 1988년 복귀때 반응을 들 수 있는데, 이때 처음으로 싱글컷 된 "Everything your heart desire"가 빌보드 핫 100에서 3위를 차지했음에도 본인들을 포함 평단에서 '실패'쪽으로 판단했을 정도 (즉 1위를 기대했다는 이야기이다). 홀&오츠의 사실상 전성기의 마지막 히트곡은 이들의 32번째 싱글핫차트 100 히트곡이자, 28번째 빌보드 핫 탑40이자, 21번째 연속 탑 40싱글곡인 "Oh, Yeah!"앨범 수록곡 "Downtown life"였다. 1990년의 So close (빌보드 11위)가 있었지만, 역시 이 곡을 포함해 3곡의 히트싱글이 포함된 1988년의 Oh Yeah!가 마지막 전성기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상당히 거물이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아티스트 중 하나다.[* 80년대의 해외 팝 스타 중에는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검열당해 국내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가 [[프린스]].]이는 아마도 80년대 다른 뉴웨이브 신스팝 계열의 스타들에 비해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는 약간은 생소한 느낌의 장르의 대표격이었던 이유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서도 골수 팬이 존재하고 있고,[* [[윤종신]], [[김구라]] 등 ]또 광고음악, 영화음악 등에 이들의 음악이 많이 쓰여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곡이 많이 있다. 주로 Hall & Oates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공식명은 사실 Daryl Hall and John Oates이다. 본인들은 듀오라고 불리는 것보다 독립적인 두 아티스트의 협업으로 인식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를 거쳐 현재까지도 (가장 최근 앨범은 2018년) 대릴 홀 자신의 집을 개조한 스튜디오에서 가수들을 초청해 라이브를 유튜브로 공개하는 "Live from Daryl's House"를 통해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